경술국치란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의 치욕이란 뜻으로 1910년 8월 29일 조선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사건을 말하는데요, 당시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은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한일합방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날부터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돼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제 합병 이후 황현, 민영환, 한규설, 이상설 등 일부 지식인과 관료층이 자결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합병 전후로 약 14만 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국가적 치욕의 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8월 29일 경술국치일! 그러나 빼앗긴 주권에 암울했던 그 상황 속에서 나라와 민족을 저버린 친일 경찰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태석과 노덕술 이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친일 경찰이 같은 조선인을 악랄하게 탄압하고 일제의 앞잡이 역활을 했습니다.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는 친일 경찰 김태석(1882~?)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관료로 1919년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를 체포하고, 의친왕 이강 공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망명하려는 계획을 알아내 체포하였습니다. 또한 밀양의열사단사건의 홍종린을 고문하는 등 일제 경찰로서 온갖 악행을 저질러,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7가살'(七可殺)로 지목되었습니다.
김태석은 특히 고등경찰 재직중 밀정을 이용하여 독립운동가들을 분열하게 하는데 크게 활동했으며, 체포된 양심수들에게 온갖 잔인한 고문을 가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김태석은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하던 중, 1950년 6월 한국전쟁 직전에 석방되었으며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고문 기술의 70%를 직접 개발했다고 알려진 친일 경찰의 대명사 '고문귀신' 노덕술(1899~1968)은 그의 손에 걸리면 살아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고등계 형사를 지낸 노덕술은 하도 잔혹하게 고문을 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문을 받다가 죽거나 출감 후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가 행했던 고문은 고춧물 먹이기, 전화기 고문으로 알려진 전기고문, 일명 비행기타기로 알려진 엄지손가락을 묶어 매달기, 손톱 발톱 뽑기, 혀 뽑기, 칼로 찌르기, 못이 박힌 상자에 넣어 흔들기 등 다양했는데요, 노덕술이 미친듯이 고문에 매달리는 것을 보고는 일본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특히 노덕술은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빨갱이로 몰아 중부경찰서에 구금한 후 잔혹하게 고문했는데요, 전해진 일화에 의하면 집에 돌아온 김원봉은 "내가 조국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는당하지 않았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다니, 이럴수가 있소!"라면서 꼬박 3일간을 울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노덕술은 육군 범죄 수사 단장, 서울 15 범죄수사대 대장 등 고위직을 계속 맡았다고 합니다. 이후 뇌물수수혐의로 파면되어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와 칩거 생활하면서 지내다가 1960년 7월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이 낙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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