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림과 어머니 나애심-
조용필에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한 김혜림은 1989년 DDD란 곡으로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가수인데요, 대표곡으로는
DDD를 비롯하여 '날 위한 이별', '있는 그대로', '이젠 떠나가 볼까 등 다수의 곡이
있습니다.
김혜림의 어머니는 전설적인 가수이자 배우였던 고 나애심 선생님입니다. 1950년대
60년대를 풍미한 나애심은 1930년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으로 이국적인 외모와 허스키한
음색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가요계와 영화계를 아울러 한 획을 그은 스타 나애심은 당시 문인 등 예술인들의
집합체였던 '명동 시대'의 주역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예술인으로 구성된 '꽃초롱'단원으로 입단해
무대 활동을 시작했으며 막내동생 전봉옥 등과 함께 '아리랑 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쇼에도 출연했습니다.
1953년 '밤의 탱고'로 정식 데뷔한 나애심은 이후 '정든 님', '언제까지나', '세월이 가면',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과거를 묻지마세요', '맘보는 난 싫어'등 300여곡을 발표했습니다.
또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는데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여군', '구원의 애정', '백치 아다다',
종말 없는 비극', '돌아오지 않는 해병', '쌀', '감자',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등에 출연했습니다.
1950년 당시 나애심은 정열적인 눈, 이지적인 마스크로 등장해 무대와 스크린을 누비면서
'한국의 안나카시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김혜림은 나애심의 팬이었던 조용필이 집에 자주 놀러오면서
김혜림의 재능을 알아보고 조용필의 도움으로 데뷔했습니다.
나애심은 지병으로 오랜 투병끝에 돌아가셨는데요, 김혜림은 38살에 어머니 병 간호를 시작해
돌아가실 때까지 13년을 병간호 했다고 합니다.
한편 김혜림은 펴팩트라이프에서 자신의 노래 '날 위한 이별'이란 곡은 본인의 실화임을 밝혀
놀라게 했는데요, 김혜림의 남자친구는 일반인이었는데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결국 헤어지게 된 두사람은 서로 잊지 못해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요, 남자친구는 헤어지고 나서
술에 취하면 음성 메시지를 남기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김혜림은 울면서 메시지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슴 아픈 이별 후에 만들어진 곡이 바로 '날 위한 이별'이라는 곡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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