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이상용 근황-
'원조 군통령', '뽀빠이'등으로 불리는 이상용은 과거 방송된 '우정의 무대'에서 사회를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1989년 4월에 처음 방송을 시작해 1997년 3월에 종용된 '우정의 무대'는
최고 시청률 62%까지 나오는 등 국민예능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이상용은 사회봉사와 모금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특히 주력한 것은 심장병 어린이
돕기 사업이었다. 그런데 1996년 11월 '우정의 무대' 녹화 도중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닥쳤고
녹화는 중단됐다.
그들은 경찰이라 주장하면서 심장병 어린이기금 횡령 혐의로 이상용을 수사한다고 했다.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갔고 온갖 매체에서는 그를 횡령범으로 몰았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안 된 출처 불명의 소문들이 퍼져나가더니 마치 진실인 양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벤츠s500'을 탄다. 집이 40억짜리다. 만 평이나 되는 땅이 있다'는 등의 루머가 퍼졌다. 하지만
진실은 얼마 안 가 드러났다. 검찰에서 조사를 착수한 지 3개월 만에 그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 사업을 이용해 횡령을 일삼은 파렴치범이라는
누명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제대로 된 해명 기사도 내주지 않았다.
이후 이상용은 '횡령범' 이미지가 씌어져 방송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상용은 먹고 살기 위해
단 돈 43만원을 들고 미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이상용은 관광버스 가이드로 일하면서 근근히 생활했다고 한다.
이상용은 어린시절부터 파란만장한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용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가 먹을 것이 없어 돼지 밥 얻어먹으며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상용도 태어날 때 힘 없는
애기로 태어났다고 한다.
하루는 가족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이 놈은 살아도 평생 여동생 고생 시킨다며 죽이자"고 했다고 한다.
결국 이상용은 산 채로 토끼장 밑에 묻혔다. 하지만 당시 7살이던 이모가 깜짝 놀라 꺼내 안고 산으로 도망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상용은 "그렇게 살았으니 동네 260명 아주머니들이 번갈아가며 젖을 먹였다. 그렇게 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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